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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미디어의 미래

"준비도 성찰도 없이 웹3 이니셔티브 쥐겠다"는 언론

by 수레바퀴 2024. 7. 19.

팬데믹을 겪는 동안 웹 3.0(이하 웹3) 생태계에 대한 꿈은 몇몇 기업들의 파산과 리더의 윤리적 문제로 거칠게 조각이 났다. 포털사이트와 소셜미디어 등 중앙집중식 플랫폼은 건재하지만 균열이 생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간 플랫폼 기업들은 이용자 (콘텐츠) 활동과 데이터를 근거로 광고 수익을 올리고 플랫폼 기능 및 정책의 독점적 결정을 좌우해 왔다. 이 통제권만 유지하는 것으로는 치명적 위기는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웹3은 부상하였지만 지금도 무엇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는 규제의 불확실성도 자리잡고 있다. 디지털 자산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기술의 비즈니스 잠재력을 믿는 쪽에서는 웹3을 떠받드는 3대 기술-블록체인(분산 원장), 스마트 계약, 디지털 자산과 토큰(가상자산, 스테이블 코인,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CBDC), NFT)을 앞세운다. 

미디어 영역에서 이 기술의 적극적인 수용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대다수 매체는 인터넷 이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마련하지 못한채 기존 비즈니스의 수익성 악화에 빠져 있어서다. 미국, 영국 등 전통적 매체산업이 강성했던 곳에서도 상당한 언론사가 문을 닫고, 비용 절감에 나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구독이 몇몇 언론사에는 희망의 빛을 제공했지만 다른 수익 흐름의 손실을 거의 메우지 못했다"는 것은 현실이다.

한국의 언론 생태계도 나날이 쇠락하고 있다. 광고주, 권력 등과의 독특한 밀월 관계조차 '양극화'로 정리되는 양상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편의성, 속도, 개인화 경향의 뉴스 소비 행태로 디지털에서 언론 브랜드와 오디언스 간 애착도는 급락한지 오래다. 특히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에서) 집중하며 콘텐츠를 보는 지속 시간은 8초 정도에 불과하다. 언론의 전문 분야인 롱폼 탐사 보도가 기를 펴지 못하는 대신 틱톡 같은 숏폼 영상이 독자의 눈길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여론의 격전지는 언론사가 아니라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로 계속 이동했다. 인터넷은 다양한 목소리를 분출하고 있지만 그 중심 무대는 언론사가 아니라 페이스북이나 유튜브가 됐다. 새로운 영향력자(influencer)들은 언론사의 뉴스를 읽는 시간을 더욱 감퇴시키고 있다. 상당수 레거시 미디어는 트래픽을 확보하기 위해 (신문지면이나 방송 뉴스에서는 다룰 생각도 하지 않았을) 고육지책으로 소모적이고 선정적인 인물과 소식들을 다루며 분투하고 있다.

"미디어의 미래는 웹3"이라는 구호가 솔깃한 것은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가령 웹3은 (현재 기술적으로 확신하기 어려운 순간이지만) 콘텐츠 배포에서 포털이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 사업자를 통하지 않더라도 생산자인 언론사(기자)와 독자의 직접적인 거래(P2P)를 약속한다. 언론사는 일방적인 알고리즘의 그늘을 넘는 등 매개자의 정책을 고려하지 않고, 독자는 보이지 않는 의도나 간섭없이 원하는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 독자는 이때 구독(소액결제)이나 참여를 통해 토큰을 확보하고, 언론사 및 기자는 수고를 보상받을 수 있다.

<타임>의 최고 경영진은 "일반 디지털 구독자 대상의 커뮤니티보다 '타임피스' NFT 소유자로 형성한 커뮤니티의 충성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타임피스 커뮤니티'를 새로운 생태계의 창조자로 보는 <타임>은 메타버스 플랫폼 '샌드박스' 내에 타임스 스퀘어를 구입했다. 이곳에서 독립적인 이벤트를 열고 독자를 초대하고 있다. 일종의 '추종자'를 만드는 활동이다. <타임>의 집념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거론된 기회는 뉴스 콘텐츠(아카이브 속의 사진, 스토리 등)나 언론사가 여는 이벤트 티켓과 같은 실제 물건을 포함하여 자산의 토큰화된 버전(NFT)이 대표적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아티팩트(ARTIFACT) 프로젝트나 <타임>의 '타임피스(TIMEPieces)' 등은 자원의 자산화, 구독자 관계 모델의 전환 측면에서 주목받은 바 있다. NFT는 언론사가 제시하는 한정판 표지와 보도사진, 스페셜 콘텐츠 같은 독점적인 경험에서 활용한다. 중개 수수료를 없애 미디어 브랜드는 종전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독자의 서핑이나 관심을 가상자산(암호화폐)으로 보상하는 분산형 광고 플랫폼도 추진되고 있다. 브레이브(Brave)는 오픈 소스 웹 브라우저를 통해 독자가 개인 정보 보호가 적용된 광고를 시청하면 BAT(Basic Attention Token)를 획득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그러나 언론사가 웹3의 이니셔티브를 갖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단 블록체인 환경을 이해해야 한다. 개발자 몇 사람을 고용하는 단편적인 방식으로는 진전할 수 없다. 국내 언론사는 개발 그룹의 규모나 전문성이 웹2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관련 예산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갑 서비스, 토큰 표준 및 분산형 어플리케이션과 같은 암호화 기능을 기존 CMS나 웹/앱 플랫폼에 통합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기회비용이 필요한 것이다.

곤란한 이슈는 시스템 구축이기보다는 이것을 기반으로 독자관계나 비즈니스 구조를 기획하는 데서도 생긴다. 2~3년 전 클레이튼, 뉴밍 등 국내 언론사들을 아울러 새로운 생태계를 도모했던 프로젝트는 지지부진하다. 언론계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플리케이션을 돌릴 인프라가 성숙하지 않은 것은 환경의 문제지만, 더 본질적인 한계는 언론사의 '디지털 구독자' 부재에 도사리고 있었다. 인터넷 등장 이후, 다시 말해 포털 생태계 25년이 경과하는 동안 언론사 브랜드를 지지하는 독자를 확보하지 않았다. 연결(접점)은 있었지만 관계는 없었다. 또한 충분한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다. 언론사가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저널리즘의 독보성이다. 디지털에서는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경험도 보태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포털이나 유튜브에 끌려다니며 과거에 축적해온 영욕의 브랜드 자산(IP)을 소실했다.

그 다음은 독자의 '노쇠-나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다. 레거시 미디어는 '영 오디언스 전략'을 수사적으로는 내세우면서도 기존의 독자들이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현재 한국의 지상파방송사, 종편TV, 신문의 핵심 오디언스는 50~60대 이상이다. 반면 웹3는 젊고 기술에 익숙한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어 기존 독자층으로는 한계가 예상된다. 키 관리, 디지털 지갑 활용 등은 기존의 독자 관리(CRM, 고객 응대) 수준으로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NFT 거래소를 오픈한 한 신문사는 고객의 디지털 지갑을 직접 설정해주는 등 커뮤니케이션의 낭비와 사업의 왜곡이 발생했다.

웹3 생태계를 이끌어가겠다는 언론사(의 리더)가 존재한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얼마나 준비하고 있고 점검하고 있는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무런 준비나 현실의 이해 없이 달려드는 사람과 조직이 너무 많다.


독자가 핵심 자산이고 최우선인 미디어 기업은 웹3으로 이행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이때 리더십은 중요하다.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나 응용이 아니라 '오디언스 퍼스트' 같은 업의 궤적을 근원적으로 재정의하는 데 나서야 한다. 기업의 비전과 로드맵도 구성원들과 적극 공유해야 한다. 이것은 인터넷 이후,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등 디지털 기술, 문화를 겪은 것에 필적한다. 언론사는 거대한 학습을 수반해야 한다. 신사업 담당자와 개발자만 고투하는 것으로는 성사가 어렵다. 

데이터베이스(콘텐츠 아카이브)도 마찬가지다. 자원의 자산화(Digital Asset Management)는 필수적이다. 인공지능 생태계에서도 언론사 안팎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확보하는 역량이 관건이다. 웹3의 비즈니스는 결국 자산화된 것, 더 상업적으로는 IP에서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브랜드 평판 즉, 언론 신뢰의 영역이 이를 좌우한다. 저널리즘의 원칙에 대한 문제이다. (언론사에게) 웹3은 결국 실질적인 저널리즘의 경쟁 무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웹3에서 언론사와 독자는 유대감, 자부심과 긍지, 효능감으로 얽힌다. 뉴스조직은 독자에 훌륭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건네고, 독자는 적극적으로 소비(공유), 참여하면서 보다 더 강력한 관계가 된다.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새로운 거래 방식을 채택하고 독보적인 디지털 상품을 거래하는 독자는 매체에 충성도가 높다. 반면 권위적인 뉴스조직과 독자의 관계는 느슨하고 냉랭하다.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뉴스 서비스와 독자는 명확하게 분리돼 있다. 

이들을 열렬하게 받아들일 구성원의 태도와 업무 환경, 충분한 IT 체계, 일관된 리더십과 비전, 제품 및 브랜드의 신뢰구축 없이 웹3 이니셔티브로 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3년 전 언론계 일각에서 웹3 생태계 운운하던 때가 있었다. 함께 모이면 태산의 소리가 날 수도 있지만 아무런 준비없이 달려든 매체의 연합으로는 '서일필(鼠一匹)'로 그칠 뿐이다. 철저한 자기 점검과 성찰은 잠재력 큰 기술을 도입할 때 반드시 짚어야 한다. 

이 글은 최근 한 언론사의 디지털 총괄 책임자가 찾아와서 웹3 이니셔티브 방향과 전망을 문의하였을 때 나눴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이날도 여러 강연에서 그리고 글들에서 밝힌 내용을 기초로 답변했다. "디지털 뉴스 구독 전략의 경우도 단순히 제품 차원의 접근으로 다뤄서는 안 되고, 독자 관계(마케팅)를 비롯 리더십과 조직 등의 리셋을 포함해야 한다. 하물며 웹3는 '구독'을 포함하여 언론의 전환과 진화의 과정인 만큼 더 많은 숙고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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